삼성투신운용은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회사였다. 생명,화재,카드,증권 등 대부분 삼성 계열
금융회사들이 해당업종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유독 삼성투신만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주식형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51개 자산운용사 가운데 3년간 누적 수익률(주식형)은 31위에 그쳤고 최근 1년 수익률도 겨우 20위에 턱걸이했을 정도다. 그룹 차원에서는 이런 부진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만큼 그룹에서도 소외된 회사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삼성투신이 놀라운 변신을 하고 있다. 최근 6개월간 수익률은 전체 운용사 중 4위에 올랐고 3개월 수익률로만 보면 3위까지 뛰어올랐다. 지난 몇 달 사이 삼성투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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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서 부활의 싹은 피어나고삼성투신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은 삼성 특유의 DNA인 위기경영이었다. 올해 초부터 여의도 증권가에는 "삼성생명이 별도의 투신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대주주(65%)인 삼성증권과 합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흘러 다녔다. 모두 확인되지 않은 루머였다. 루머라도 삼성투신에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삼성생명은 자산규모가 100조원을 넘는 민간 최대의 자산 보유사이자 삼성투신 고객이다. 이런 회사가 거래해오던 계열 운용사를 버린다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큰 타격이었다.
사실 삼성투신의 부진은 역설적으로 삼성그룹 계열사라는 데서 기인한 측면도 있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삼성생명 등 그룹계열사 자금만 적당히 굴려도 수수료만으로 삼성투신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투신 고위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때마침 그룹 최고위층에서는 "삼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사업인 만큼 그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떨어졌다.
위기감은 조직으로 퍼져갔다. 경영진,직원 모두 마찬가지였다.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고,최대 고객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 존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변화였다. 다가오는 위기와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삼성그룹 고유의
유전자가 지지부진한 삼성투신을 다시 세운 원동력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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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에게 맡겨라경영진이 택한 위기 타개책은 삼성의 트레이드마크인 혁신이었다.
핵심은 우수한 인력이 마음껏 능력을 펼치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삼성투신은 이를 위해 자산운용권을 펀드매니저에게 돌려줬다. 그동안 삼성투신 매니저들은 자산의 80%를 미리 짜놓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시하는 대로 투자했다. 나머지 20%만이 펀드매니저들의 몫이었다. 개인의 능력이 발휘될 기회는 별로 없었고 수익률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 비율을 뒤집었다. 80%를 매니저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바꿔버렸다.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업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한마디로 "마음대로 하라.책임도 지고,돈 벌면 보상도 확실히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삼성투신에 비로소
삼성식 인재경영이 도입된 셈이다.
현장경영과 시스템경영에도 신경을 썼다. 자산운용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3개 주식운용본부에
리서치센터 인원을 내줬다. 이들은 매니저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운용의 핵심인 개별
종목 발굴에 나섰다.
경쟁시스템도 만들었다. 한 명의 본부장 밑에 있던 3개 팀을 독자적인 3개의 본부로 승격시킴으로써 본부 간 경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조직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었다. 조직 내에는 뭔가 해보자는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물을 만난 매니저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스타일에 따른 투자를 시작했다. 회사 차원에서는 그동안 다른 회사를 따라하던 상품
설계에서 벗어나 삼성만의,삼성다운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덱스펀드의 명가(名家)라는 강점을 살려 삼성그룹 밸류 인덱스펀드를 출시한 것이 그것이다. 이 펀드는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삼성투신이 운용하는 믿을 수 있는 삼성그룹주 펀드'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많은 돈을 끌어모았고 최근 삼성그룹주 주가 상승으로 전체 수익률 향상에도 기여했다.
최종 결과는 역시 수익률로 나타났다. 3년간 누적 수익률은 31위,1년간은 20위에 불과했던 수익률이 조직개편을 기점으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최근 6개월간은 4위,3개월간은 3위까지 올라왔고 최근 한 달의 성적은 100억원 이상 규모 주식형펀드 운용회사 중 2위를 기록했다. 위기경영,인재경영,시스템경영 등 삼성의 1등주의로 재무장한 성과였다.
삼성투신 경영진은 요즘 또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이런 실적이 반짝 성과에 그치지 않고 회사,투자자,자본시장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장기 발전 프로그램을 찾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쿠키 사회]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한국 사회의 유명 인사가 22일 한자리에 모여 특강을 열었다. 연세대 학생들을 상대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안 교수는 ‘정연한 논리’를, 박 이사는 ‘다양한 경험’을 주무기로 삼아 ‘미래 리더의 창업 정신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역설했다.먼저 강연에 나선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 교수는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무엇이 기업가 정신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강연했다. 안 교수는 “기업가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며 “기업가는 전략과 비즈니스에 능하기보다는 현실 적응력이 높고 기회를 잘 포착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10가구 중 1가구가 기업가 가구입니다. 1년에 결혼하는 사람보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더 많구요. 기업가는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영업자도 훌륭한 기업가입니다”.기업가에 대한 통념도 뒤집었다. “인맥이 넓고 젊을수록 기업가가 되기 싶다고 생각하지만,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개 내성적이고 중년에 기업을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벤처 기업 사장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NHN, 다음 등 성공한 기업의 대표일수록 말도 없고 내성적이었어요.”안 교수는 ‘기업가 정신’으로 번역되는 ‘Entrepreneurship’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영어에 ship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활동’이라는 뜻”이라며 “기업가는 행동이 중요하므로 ‘기업가 정신’이라는 단어보다는 ‘기업가치 창조활동’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강연에 나선 박 이사는 최근 정부가 자신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을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 “영국에 가보니 총리의 공식 홈페이지에 가장 많이 올라온 민원이 ‘총리 사퇴’였어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듣기 싫은 소리를 좀 했다고 명예 훼손 소송을 걸어서 제가 요즘 좀더 유명해졌습니다”. 이어 박 이사는 ‘아름다운 재단’을 운영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사례를 들어 사회적 기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만화가 허영만씨가 2008년 킬리만자로산을 다녀온 뒤 ‘윗 공기가 차가운 것은 참아도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참기 어려웠다’며 노숙자들을 위한 매트리스를 사라고 1000만원을 기부했어요. 이런 생각이 사회적 사업의 시작입니다”. 박 이사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며 강연을 정리했다. “사회적 기업은 물고기를 대신 잡아 주는 것도,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수산업 전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연세대 대우관에서 열린 이날 강연은 연대 경영대가 주최했으며 학생 6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